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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바다 속, 나무수염아귀라는 심해어가 산다. 암놈은 화려하다. 거대한 몸집에 야광처럼 빛나는 수염을 달고 다니며 먹이를 잡는다. 열 악한 먹이사슬 환경이 그런 수염을 발달시켰을 것이다. 수컷도 진화했다. 오직 생식을 위해서 나무수염아귀의 수컷은 살아간다. 암컷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몸의 90%가 정소다. 그리고 암컷의 몸을 뚫고 들어가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아간다. 정자를 공급하는 대가로 평생 암컷을 빨아먹는다.
수컷이란 대개 그러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생식의 본능만은 잃지 않는다. 남자가 5초마다 한 번씩 야한 생각을 하는 이유도 결국 수컷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만약 그토록 자주 솟아오르는 본능에 충실하다면 지구의 모든 대륙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에게 발정기를 따로 주지 않으셨지만 피임이라는 효율적 방법 또한 선물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평생 수 천 번의 섹스를 하면서도 아이는 고작 하나둘만 낳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피임은 무언가를 소외시킨다. 정액이다. 대저 몸의 모든 분비물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귀지마저 그렇다. 정액의 본분이란 자궁으로 흘러 들어가 난자를 만나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아, 실로 고귀한 임무다. 그러나 평생 쏟는 수 갤런의 정액 중 난자를 만나는 양은 지극히 미미하다. 대부분의 정액들이 만나게 되는 건 슬프게도 클리넥스다.
남자란 70%의 수컷과 30% 정도의 인간이 동거하는 생물이다. 70%의 수컷은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정액을 스스로 닦으며 허전해 한다. K2에 등정했으나 꽂을 깃발을 준비해 오지 못한 등산가의 애석함 비슷한 것을 여체 위에 오른 남자는 사정 후 느끼는 것이다.
수컷으로서 지닌 사명에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얼씨구, 입이 있었다. 비록 질은 아니되 질과 가장 유사한 구조의 신체 부위. 구강 사정의 창시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아마 우연히 오럴 섹스에 탐닉하다가 상대의 입에 뿜었을 것이다. 질내 사정의 쾌감과 마찬가지로 뭔가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것이 들어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구강 사정의 창시자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그 희열을 알게 됐다. 따귀 맞을 것을 감수하고 늘 기회를 봤다. 그리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