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기』에는 시황제 뿐만 아니라 전설 속의 인물・황제(黄帝)로부터 전한의 무제에 이르기까지 진시황을 비롯한 황제들에 대해, 그리고 왕이나 황제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활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기』에 기록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노애(嫪毐)입니다.
이 사람, 거근으로 유명한 사람이라죠.
노애가 누구인지 간단히 적어보면,
바야흐로 시대는 진시황의 아버지 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子楚)는 형제만 20명 정도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 왕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조(趙)라는 나라에 인질로 보내져 불우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죠.
여기에 눈독을 들인 것이 여불위(呂不韋)라는 사내였습니다.
여불위는 장사로 돈을 번 인물로, 자초를 진나라 왕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거금을 털어 공작을 벌였고, 그 결과 자초를 보란듯이 후계자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자초는 여불위에게 몹시 고마워했는데요, 어느 날 자초는 그만 여불위의 첩이었던 조희에게 홀딱 빠져버리고 맙니다.
나도 저년이랑 하고 싶다!라며 여불위에게 떼를 쓰는 자초. 여불위는 자신의 장래를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조희를 자초에게 넘겨줍니다.
자초는 조희의 (아마도)고도의 테크닉에 흠뻑 취했고, 결국 조희는 그의 아이를 배게 됩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진시황인 것이죠.
참고로 『사기』에는 여불위가 자초에게 조희를 주었을 때, 이미 그녀의 뱃속에 여불위의 자식이 들어있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시황의 진짜 아버지는 여불위였다, 는 소리가 되겠죠(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많지만요).
어쨌거나 그 뒤 자초는 무사히 진나라 왕위에 즉위합니다. 하지만 즉위 3년만에 죽어버리고 말죠.
그리고 새롭게 왕위에 오른 것이 훗날의 진시황이었습니다.
진시황은 아버지의 은인인 여불위에게 은혜를 갚고자 하여 그를 두텁게 대했습니다. 여불위는 요즘으로 치면 총리 자리에 올랐고, 일대 세력을 이루게 되죠.
し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진나라 왕 진시황의 어머니인 조희와의 불륜관계였습니다.
조희는 상당한 밝힘증에 음란하기까지 하여 남편인 자초가 죽고 난 뒤 원래 애인이었던 여불위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희는 진시황의 어머니이죠.
들키면 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추방, 또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모처럼 얻은 지위와 권력을 버리게 될지도...여불위에게 있어 엄청난 리스크였던 셈이죠.
여불위는 조희와의 관계를 끝내고자 노력했지만, 음란한 조희는 여불위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여불위가 생각해낸 것이 조희를 사로잡을 남자를 바치는 것이었죠.
누가 없을까 누가 없을까………찾았다!
그것이 거근・왕자지로 유명한 노애였습니다.
이 부분을 『사기』의 「여불위전」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시황제가 장성하였음에도, 모태후의 음란함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불위는 일이 발각되어 자신이 해를 입을지 두려워 은밀히 큰 음경을 지닌 노애라는 자를 찾아내 부하로 삼은 뒤, 음탕한 풍악을 울리며 그의 음경에 수레바퀴를 끼워 돌아다니게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태후는 음심을 불태웠다. 결국 태후는 남 몰래 노애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노애의 거근으로 수레바퀴를 돌리는 쇼를 벌이며, 그 소문이 조희의 귀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죠.
조희는 여불위의 생각대로 노애의 왕자지에 흥미진진해 했습니다.
당시 궁에는 여관이나 환관(거세, 페니스를 자른 남자) 밖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여불위는 노애가 거세했다는 거짓 서류를 꾸며내 노애를 궁정에 들여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여불위의 생각대로 조희는 노애의 왕자지에 환희하며 그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노애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고, 노애는 조희의 총애를 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갔죠.
…하지만 결국 조희와 노애의 관계는 진시황에게 들키고 말았고, 그 결과 조희와 노애는 처형, 여불이는 사건 관계자로서 추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인생을 보낸 노애. 그는 거대한 페니스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출세하여 권력을 거머쥐고 역사서에 이름을 남기기에 이른,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유별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